2.
수원오피 심벌
곶(串)이 곶[花]으로
정조가 명명했다는 화성(華城)의‘화(華)’자의 유래를 찾아 수원의 본 고장
남양의 바닷가 포구를 찾아가 보기로 한다.
장산곶이란 예에서 보듯 지명 아래 붙어서 반도형(半島形)으로 생긴 갑(岬)을
‘곶’(기원형은‘고지’)이라 한다. 남양 반도라 불리듯 화성군 남양면은 전체
가 곶으로 되어 있고, 그 중에서도 화량포구[花梁浦]는 그 지형이 마치 입을 내
밀 듯 서해 바닷가로 삐죽히 뻗어 있다.
화량포는 일찍이 중국 대륙 문화의 유입 통로로서 신라 진흥왕 때(564)에 화량
진(花梁鎭)을 개설하였다. 또한 이 곳은 인천이 개항하기 이전까지는 중국 남경
(南京)으로 가는 길목으로 흔히‘남경두목쟁이’[南京渡項]라 일컬었으며 이 곳
에 성을 쌓아 당항성(唐項城)이라 했으니, 이는 당나라로 가는 길목이라는 뜻이
다.
이런 전략적인 요충지의 이름을 왜 화량(花梁)이라 붙였을까? 화량은 꽃피는
포구란 뜻은 아니다. 바다로 삐쭉히 내민 곶(cape)에 형성된 마을, 곧‘고지돌’
혹은‘곶돌’을 차자표기한 것이다. 현용어 꽃[花]은 예전에‘곶’이라 했고 이
는‘串’의 곶과 그 음이 유사하다. 고지>곶을 곶(串)이나 갑(岬)으로 차훈하지
않고 꽃을 뜻하는 화(花)로 대신한 것은 지명 표기에서 이왕이면 좋은 뜻의 한
자로 적으려는 지역민의 바람이 작용한 탓이다.
한편 화량(花梁)의 양(梁)은 지명 표기에‘돌’또는‘들’로 읽히는 차자이
다. 노량진(鷺梁津)이 노들나루로, 명량(嗚梁)이 울돌로 읽히는 것처럼, 돌(들)
은 강이나 해변가의 취락지에 붙는 지명임은 주지의 사실이다.
남양에는 거지동(居芝洞)이란 마을이 있다. 거지(居芝)가 고대의 고차(古次),
홀차(忽次)와 같은‘고지’의 차음 표기이다. 옛날 화량진(花梁鎭)은 지금의 남
양면 지화리(芝花里)인데 이는 거지동(居芝洞)의 지(芝)와 화량동(花梁洞)의 화
(花)를 따온 것으로 거지(居芝)나 화(花)는 공히‘고지’의 표기이다. 이와 관련
하여 수원과 화성에는 유독‘화(花)’자 지명이 눈에 많이 띄이는 게 결코 예사
롭지 않다. 이 지역에 꽃이 많아서가 아니라 해변으로 뻗은 곶(串)이 많아서 붙
어진 이름일 것이다.
매화리(梅花里 : 남양면) 수화리(水花里 : 남양면)
지화리(芝花里 : 송산면) 국화리(菊花里 : 양감면)
화수리(花樹里 : 우정면) 화산리(花山里 : 우정면)
고지리(古支里 : 정남면) 이화리(梨花里 : 우정면)
화당리(花塘里 : 팔탄면) 동화천(桐花川 : 봉담면)
남양면의 면 소재지인 매화리(梅花里)의 매화(梅花)는 수원 지명
의 어원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. 매(梅)가 매홀(買忽)의 매(買)와 통하는 물>미
를 뜻하고, 화(花)는 고지>곶(串)을 뜻하기 때문인데 이런 점에서는 수화리(水花
里)도 마찬가지다.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우정면의 화산리(花山里)와
융건릉이 위치한 화산(花山)이란 지명이다. 흔히‘꽃뫼’라 일컫는 화산(花山)
의 화(花)에서 이와 통하는 화(華)로 옮겨가지 않았나 하는 의심에서다.
(2) 곶(串) > 곶의 화(花)가 다시 화(華)로
화(華)는 화(花)와 통하는 한자이다. 자전에 의하면‘꽃필·화[開花]’, 또는
중화(中華)와 같이 땅 이름이나 나라 이름으로 쓰인다고 적고 있다. 본래 고지
[串]에 솟은 산, 즉 곶뫼[串山]를 뜻이 좋은 화산(花山)으로 적다 보니 훗날 사
람들은‘꽃뫼’로 부르게 되었다. 그리고 이 꽃뫼, 곧 화산에서 화성(華城)이라
는 지명이 생겨나게 된다.
이러한 사정은 정조가 화성(華城)이라는 지명을 풀이한 대목에서 보다 구체적
으로 확인이 된다. 1793년(정조 17) 1월 12일 팔달산에 올랐던 정조는 팔달산 아
래 신도시를 화성(華城)이라 명명(命名)하였다. 이때 정조는 수원부를 화성유수
부(華城留守府)로 격상시켜 서울을 개성(開城), 광주(廣州), 강화(江華), 화성
(華城)의 4 유수부가 동서남북으로 감싸는 체제를 완성시켰으며 화성유수부에 장
차 성곽 축성을 의도하였다.
그리고 이듬해인 1794년(정조 18) 1월 15일부터 화성(華城)이라 불리는 성곽
이 건설되기 시작하였다. 화성(華城) 축성 바로 전날인 1월 14일 정조는 연석(筵
席)에서 화성(華城)이라 이름지은 내력을 밝혔는데 이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
다.
화성(華城)에서의‘화(華)’자는 중국 요(堯) 임금 때 화(華) 땅의 봉인(封人)
이 장수(長壽), 부귀(富貴), 다남자(多男子) 등 세 가지를 가지고 요 임금에게
축원(祝願)하였다는 고사를 취한 것이다. 그리
고 사도 세자의 묘소인 현륭원(顯隆園)이 자리한 화산(花山)의‘화(花)’자를
딴 것이기도 하다. 곧 화(花)는 화(華)와 통하니 화성(華城)은 곧 화산(花山)이
라는 뜻이 된다.
이처럼‘수원’의 지명 유래에는‘물’과‘곶’이라는 지형 상의 특성이 그대
로 반영되고, 여기서 비롯된 수(水)와 화(花) 또는 화(華)가 어우러지면서 여러
다른 이름으로 불리었던 것이다.